한국영화에 《B형 남자친구》라는 영화가 있다. 운명 같은 사랑을 믿는 여대생 하미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영빈에게 첫눈에 필이 꽂힌다. 하지만 킹카 영빈은, 뭇 여성들의 기피 대상인 최악의 혈액형 ‘B형’ 남자! 대학생 신분으로 벤처 사업을 하는 그는 집은 없어도 차는 필수품인, 한마디로 폼생폼사 B형 남자. 남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허들 시합을 하고, 고층빌딩 엘리베이터에서 슈퍼맨 놀이를 하고 여친에게 주려던 꽃을 되팔아 넘기는…, 시간이 갈수록 엽기적이고 이기적인 영빈에게 상처 받는 하미는 결국, 영빈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한번 맘이 돌아서면 좀처럼 쉽게 돌이킬 수 없는 'A형' 여자와,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B형’ 남자! 최악의 조합인 이 둘의 만남은 기적적으로 행복한 해피엔딩을 맞는다.
희한하게도 우리 집도 A형과 B형의 결합이라는 것, 다만 그들과 반대로 남편이 A형이고 내가 B형이다. 결혼이라는 것이 원래 남과 남이 하는 것이라 하지만 우리처럼 너무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난다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며칠 전에 비자 때문에 남편과 같이 나고야(名古屋) 입국관리국에 갔다 왔다. 그날따라 날씨는 덥고 하이힐을 신은 발은 아프고 그래서 한걸음이라도 적게 걷고 싶어서, 나는 자동차길과 보도를 구분하라고 그어놓은 하얀 선을 무시하고 그냥 자동차길로 걸었다. 왼쪽에는 보도가 없어서 한 바퀴 빙 돌아와서 다시 길을 건너야 하기에 엄청 더 많이 걸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남편은 조금도 주저 없이 보도를 따라 에돌아 왔다.
집에 와서 층계를 올라갈 때도 나는 하이힐을 쿵쿵 울리며 올라가는데 남편은 이웃에 들릴까 소리가 날까 뒤축을 들고 사뿐사뿐 걷는다. 일반적인 상식과 룰을 중시하는 A형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B형인 나는 룰을 지키기보다는 룰이 나를 맞추도록 할 때가 많다. 예전에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할 때에도 집이 멀다는 핑계로 매일 지각했었는데 결국 학교 측에서는 한 시간씩 늦게 와도 된다는 특허를 줄 수밖에 없게 되었고 첫 시간은 수업을 안배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죄송스러운 일이다.
작년에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국제학술회에 갈 때도 그랬다. 파스포트 하나만 달랑 들고 한국영사관에 갔는데 학회초청서가 없으면 비자를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유람비자로 하자면 남편의 재직증명서가 있어야 하고, 다시 서류를 준비해 가지고 오자면 또 하루 품은 팔아야 하고 증명서를 뗀다는 것도 시끄러운 일이고, 그래서 어떻게 다시 오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이 없나 영사관관원과 실랑이질을 해서 오후에 학회회장님의 메일을 복사해 팩스로 보내는 것으로 낙착하여 두 번가는 시끄러움을 덜 수 있었다. 나로서는 잘 된 일이지만 영사관관원들에게는 꽤 폐를 끼치는 일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인 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우리 집에서 막내공주였고 그래서 무슨 짓을 해도 부모님은 언제나 내편이었으니, 우리 엄마는 내 역성 잘 들기로 동네에서도 유명했다.
결혼해서는 참을성이 많고 인내성이 강한 남편이 참아주고 이해해 주려고 애썼고…. 방학만 되면 출근하는 남편을 두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친정집에 가있을 때도, 뇌출혈로 거동이 불편한 엄마를 데리고 먼 길림에 있는 우리 집에 가면서 남편과 사전에 상의 한마디 안했고, 떠나는 날 아침 달랑 전화 한통으로 일방통고를 했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응당하다고 여겼다. 내가 내 엄마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는데 남편의 반대의견 같은 것은 있을 리가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물론 남편은 별말 없이 차를 가지고 역전에 마중 나왔고 다음부터는 사전에 전화하라는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얼마 전에 《하늘만큼 땅만큼》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너무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여주인공 은주를 보면서 옛날의 내 모습과 너무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은 사랑하지만 시댁식구는 서먹하고 어쩌다 인사를 가도 불편한 환경 때문에 기회를 보아서 집에 도망 와버리고…,
내가 시댁에 가서 제일 싫었던 것은 누구도 출근하지 않는 휴일인데도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는 시어머니를 도와주라고 옆구리를 찌르는 남편 때문에 할 수 없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일이었고 제일 힘들었던 것은 재래화장실 때문에 생기는 변비였다.
이런 나를 배려해서 재작년에 중국에 갔을 때도 남편은 어쩌다 모이는 형제들 속에 있고 싶었겠지만 넓고 편리한 우리 언니네 집에 짐을 풀었다. 그러고도 이란에 있는 큰누나 댁에 가냐 안 가느냐 하는 문제 때문에 날을 새며 남편과 다투었던 기억이 난다. 매일 시집행사에 따라다니느라 심신이 지쳤고 아직 우리 언니와는 쇼핑 한번 못 갔고 친구들도 만나지 못한지라 내일만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큰 시누이는 이미 만나보았고 그러니 하루쯤은 빠져도 되지 않겠는가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결국 인내성 있는 남편의 설복에 넘어가서 가기로 했는데 아침에 나란히 언니네 집을 나서며 그렇게 기분이 좋아하는 남편을 보며 조금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과 내가 많이 다른 점은 나는 먼저 저질러 놓고 후에 수습하는 성격이나 남편은 항상 앞일까지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크게 실수하는 일이 없고 또 자기의 분수를 알고 무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원시험 문제를 놓고도 남편과 나는 처리방법이 완전히 달랐다.
대학교 때 워낙 공부를 잘했고 공부를 취미이다시피 좋아하는 나인지라 결혼 5년째가 되던 해에 대학원시험을 보려고 하였다. 교수님들의 권유도 있었고 그래서 시험 준비를 하고 수험표까지 다 타놓고 그 다음에야 남편에게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반대할 줄이야. 결국 이야기 끝에 내가 시험을 포기했지만 은근히 그런 남편이 야속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남편이 우연히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도 기실은 대학원시험을 보고 싶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학졸업 후 5년간 남편도 해마다 교수님들과 친구들이 보내주는 대학원입학원서를 받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원 공부를 하려면 다른 도시에 가서 5년은 있어야하고 그러면 남겨진 나와 아이가 고생할 것은 번연한 일이고, 한가정의 가장이 되어서 그것은 무책임한 소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포기했는데 내가 가버리면 그 희생이 의미가 없어질 것이 아니가.
이제 와서 그때 남편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로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만약 그때 남편이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더라면 나는 내 공부를 그만두더라도 절대적으로 남편을 지지하고 뒷받침해 주었을 터인데….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것도 운명이었을 것이다.
일본사람은 세계에서 룰을 제일 잘 지키는 민족일 것이다. 규정된 날 이외에는 절대 쓰레기를 밖에 내놓지 않으며 지키는 사람이 없어도 신호등대로 움직이고 에스카레타를 타도 급한 사람들을 위해 오른쪽은 비워놓고… 그들은 참 줄서기를 좋아한다. 맛있는 라면 한 그릇 먹으려고 조용히 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고 디즈니랜드에서 십분도 못타는 제트코스터에 앉으려고 두 시간을 기다리고… 이런 일본사회에서도 나는 룰을 별로 잘 지키지 못한다. 신호등이 아직 노란색일 때 나는 벌써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고 몇 십 년 만에 한번 열리는 세계박람회에 가서도 줄서기가 싫어서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한적한 에스파니아관, 프랑스관, 인도관, 아랍관… 이런 곳만 다니며 구경하였다.
언제나 룰대로 움직이는 일본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민족적으로 A형 기질을 가진 민족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룰 때문에 사회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그래서 이 룰을 깨는 사람은 천적이 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외교대신으로 임명받은 다나카 마키코(田中真紀子)가 외교부개혁을 시도하다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관료들에게 쫓겨난 사실도, 젊은 혈기에 증권회사를 꾸리어 거액의 이윤을 올려 야구단을 사려하고 지어 후지텔레비전방송국까지 사려고 전례 없는 소동을 일으키다가 콩밥신세까지 진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 이들은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사회의 룰을 깨뜨리려 했기에 사회의 버림을 받은 것이다.
나를 닮아 B형인 딸애도 이같이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중학교 때 운동대회에서 다른 애들은 맡으라는 종목을 말없이 맡는데 딸애만은 자기가 광도를 뛰는 것이 더 성적이 날 것이라 생각해서 맡으라는 800미터 달리기를 안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같이 다수의 의견을 좇는 자기들의 룰을 깨뜨렸다는 것은 일본 애들 사이에서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이단행위였다. 순식간에 딸애는 학급에서 고립되었고 냉대를 받는 존재로 변해버리었다. 그래도 기가 세고 똑똑한 딸애였기에 그 빙하기를 건너 일류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거기에 비하면 한(韓)민족은 B형 기질을 많이 가졌다고 보아야 할 거이다. 먼저 된다는 믿음부터 갖고 일을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다. 한일공통개최 세계축구월드컵에서 붉은 악마라는 호칭으로 불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던 응원대군은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한국축구팀을 8강의 위치에까지 밀어 올리지 않았는가! 그런 열정과 호기가 도를 넘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끊어지는 비운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성격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근대화를 마쳤고 세계경제강국의 대열에 설수 있었다. 그래서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화끈한 성격을 가진 한민족이 더 피부에 가깝게 느껴진다.
신중하고 책임감이 강한 A형과 일단 흥미만 느끼면 당장 행동하는 B형이 모여 사는 우리 집, 십년을 운전해도 사고 한번 안치고 안전운전을 해온 남편과는 달리 차를 사서 한달 만에 접촉사고를 내고 불법주차를 해서 순식간에 5십만 엔을 날려버린 딸애, 그래서 화가 나고 짜증날 때도 있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열심히 미래를 위해 뛰는 딸애가 있어서, 변함없이 한자리에 굳건히 서서 가끔 상식을 벗어나는 언행으로 상투밑까지 화를 돋우는 나를 참아주고 감싸주는 남편이 있어서 나는 행복할 때가 많다.
아직도 B형의 근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나여서 여전히 크고 작은 사고를 많이 치지만 그래도 이제는 조금은 남편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게 되어서 조금은 시댁식구들을 배려할 수 있게 되어서 조금은 주위사람들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남편이 조금은 쉬워지지 않았는가 싶다.
서로 너무 비슷해서 평온하나 뜨겁지 않은 친구사이 같이 영원히 나란히 앞으로만 뻗어가는 평행선이 되기보다 서로 너무 달라서 그래서 가끔은 멀어지다가도 다시 교차될 수 있는, 그 교차점에서 불꽃이 튀고 세상이 밝아지는 그런 희열을 느낄 수 있어서, 나는 서로 다른 우리가 좋다. 멀어졌다가도 사랑에 끌려 다시 가까워지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하나로 이어지는 그런 부부가 되는, 그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소원이다.
A형 남편과 B형 아내, 티격태격하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그래서 평탄하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그런 인생을 이어갈 것이다.
『연변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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