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나는 머나먼 러시아에서 몇 십 년 만에 집에 돌아온 오빠에게 털실 옷을 떠준다고 약속했었다.
그래서 금년 초에, 러시아로 여행가기 전에 먼저 진한 풀색 털실 일 킬로그램을 샀다.
그런데 마침 학기말이라 어찌나 바쁜지 뜨개를 뜰 겨를이 없었다.
‘그래, 러시아로 가는 열차에서 뜨면 되겠다. 국제열차로 일주일이나 간다니….’
드디어 기다리던 여행이 시작되었다.
긴장한 해관전역을 치루고 흔들리는 열차에 안둔한 그날 저녁에 나는 짐 가방 안에서 털실을 찾아 꺼냈다.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털실꾸러미를 만져보노라니 내가 뜬 털실 옷을 입고 기뻐할 오빠의 모습이 선히 보이는 것 같았다.
‘빨리 떠야지, 일주일내로 뜨자면 부지런히 떠야겠지.’
한 코, 두 코…, 바이올린 선위에서 날아다니던 그 솜씨로 기다란 내 손가락이 실사이로 넘나든다. 어느새 몸체가 한 뼘이나 늘어났다. 쳐다보니 시계바늘도 열두시를 가리키고 있다. 앉아있느라 뻐근해진 허리를 쭉 펴며 나는 침대에 누웠다.
‘오빠, 기다려봐! 멋진 세타를 떠갈 테니까.’
만족한 웃음을 띠운 채 나는 꿈나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튿날부터 시차가 생기면서 제대로 자지 못해 몸이 나른해지고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지었다. 거기에다 차위 레스토랑에 가 먹어보아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제대로 먹지 못하니 몸은 더 고달파지었다. 뜨개는커녕 앉아있기도 힘들어 거의 하루동일 누워있었다. 그러다나니 뜨개는 전혀 늘어나지 않아서 겨우 반 뼘이나 떴을까 말았을까….
그 이튿날에도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뜨개속도는 점점 느리어만 간다.
‘채 못 뜨면 오빠네 집에 가서 마저 뜨면 되지. 뜨는 것도 보여주고…. 내가 뜨는 모습을 보면 오빠도 더 기특해하겠지!’
내일이면 타슈켄트에 도착하겠는데 털실 옷은 이제 겨우 몸체가 거의 완성되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날 밤, 날도적들이 선반위의 가방을 훔쳐갈 줄이야.
“탕!”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웬 남자 둘이 선반위에 있는 우리 가방을 잡아채어갖고 달아나지 않는가.
놀라 깬 나와 남편이 뒤쫓아 갔지만 그놈들은 땅으로 새버리었는지 하늘로 날아갔는지 종적도 찾을 수 없었다. 차장에게 사연을 말하며 찾아달라고 했지만 저희들은 모르는 일이라며 움직일 염도 안했다. 열차원도 그 도적들과 한 통속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일이 안 될 라니 공교롭게도 그 가방 안에 나머지 털실들이 들어있었다. 이젠 뜨고 싶어도 실이 없으니 옷을 완성할 수가 없게 되었다.
오빠네 집에 도착해서 내가 풀죽은 모습으로 몸체도 채 못 완성된 털실 옷을 꺼내보이자 오빠는 하하하 하고 웃음보를 터뜨리었다.
“나는 아마 털실 옷을 입을 팔자가 아닌 모양이다. 지나가 뜨던 털실 옷도 잃어버리었으니. 그래도 고마워. 입은 거로 하지.”
며칠 전에 언니가 뜨던 털실 뜨개를 차안에 두고 올라왔는데 밤중에 도적놈이 차 유리를 깨고 훔쳐갔다는 것이었다.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변혁기의 불안한 타슈켄트의 정세가 그대로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걱정 마. 오빠, 내가 다른 실로 더 멋진 털실 옷을 떠줄 테니깐!”
내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약속했다.
이번에는 잿빛 털실을 샀다. 디자인도 멋진 재킷 모양으로 선정했다.
그런데 며칠을 풀고 풀어도 끝나지 않는 그리웠던 이야기를 푸느라 며칠, 적당한 바늘을 찾느라 일주일, 새 옷을 시작할 때는 이미 한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이제라도 부지런히 뜨면 한 달 안에 얼마든지 뜰 수 있어.’
거북이쯤이야, 하며 으스대던 토끼처럼 나는 자신이 만만하였다.
그런데 낮이면 여기저기 관광을 다니고 저녁이면 이집 저집 초청받아 다니고…, 뜨개는 거북이보다 더 느린 속도로 전혀 진척이 안 된다.
어느새 시간을 흘러 돌아갈 날이 되었다. 그런데 뜨개는 또 몸체가 거의 되어가는 중이다.
“오빠, 미안해! 내가 열차 안에서 다 떠서 집에 가자마자 인차 부쳐 줄께!”
다시 한 번 약속을 한다. 이번에는 꼭….
또다시 흔들리는 열차위의 생활, 의연히 얼마 늘어나지 않는 뜨개, 어느덧 해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재수 없는 놈은 고춧가루장수를 해도 바람이 분다더니 그날따라 엄한 해관검사이다. 법적인 규정도 없이 검사관들의 기분에 따라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압수하기 시작했다. 외투, 양복, 테이블그로브, 주단…, 지어 뜨개중인 털실까지 차압당했다.
결국 또 털실 옷을 뜰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오빤 진짜 털실 옷 입을 팔자가 아닌 모양이야….’
그렇게 자아위안 해보아도 가슴 한쪽은 그냥 게름직하다. 아무리 오빠팔자에 밀어보아도 내가 오빠네 집에 있는 동안 부지런히만 떴었더라면 이런 낭패는 없었을 것이 아닌가. 두 번이나 반품을 만들어낸 내가 나로서도 어처구니없고 안타깝다.
하긴 응당 해야 할 일에 싫어지는 내 마음을 무언가 구실을 찾아서 용서해주고 마는 것이 이젠 고질이 되었다.
몇 번이고 시작한 영어가 그냥 “디스이즈 펜!”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든가,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갖다놓은 지 일 년이 넘는데 아직도 채 읽지 못한 것도…, 다 내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 하나도 제대로 못 잡는 사람, 그래서 무어나 뒤로 미루고 마는 사람, 그 때문에 결국은 아무 것도 못 이루는 사람, 그게 바로 나이다.
길지 않은 인생에 무언가 한 가지라도 이루어 놓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흔적조차 남지 않겠는데…. 그건 너무 허무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제라도 내 마음을 이기는 연습부터 해야 할 것이다. 작은 일에서부터….
『길림신문』, 1992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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