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생일날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워낙 등한한 나인지라 생일이 되여도 잊어먹고 지나버리기가 일수였다. 혹시 생각해냈다 해도 별다른 감각이 없이 무심히 지나버리었다.
그런데 소학교에들어간 딸애가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자기 식으로 선물을 해주면서부터 생일은 나에게도 특별한 날이 되었다. 그중 제일 인상이 깊은 것은 그 애가 나에게 제 손으로 만든 풍령(風鈴)을 선물했던 것이다.
그날 침대에 누워 책을 보느라 무아지경에 빠져있는데 무언가 사겠다고 하는 딸애의 목소리가 저 멀리 강 건너에서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엄마, 나 편리젓가락 사게 돈 좀 안 줄래요?”
“사긴 뭘 산다고 그러니. 집에 있어”
책 속 세계에 빠져 황홀해진 내 기분을 건드리는 것이 싫어 퉁명스레 내던진 내 대답이 딸애의 맑은 얼굴에 창 떨어지었다.
“엄마, 나 좀 쓸데 있거든. 어데 있죠?”
처음보다 8도나 떨어진 목소리로 조심스레 다시 물어오는 딸애에게 “식장 서랍 안에 있어.”하고 내뱉듯이 말한 나는 다시 책 속에 빠져들어 갔다.
이튿날 아침, 볶아치며 딸애를 준비시켜 학교에 보내고 도난당한 듯 어수선해진 집을 거두는데 침대 밑 구석에서 무엇인가 빗자루에 걸려 나왔다. 편리젓가락 세 개를 여섯 토막으로 쪼개서 부채형으로 묶어놓고 채색 실로 여러 가지 색의 립스틱 모양의 사탕 통들을 대롱대롱 달아놓은 노리개였다. 나는 무심히 그 노리개를 침대 우에 올려놓고 출근하였다.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니 딸애가 반갑게 달려왔다.
“엄마, 인제 왔어? 이걸 어떻게 찾아냈어요? 엄마 생일날에 선물하려고 만든 풍령인데 엄마가 먼저 보아버렸네.”
그제야 눈여겨보니 그 노리개는 확실히 풍령이었다. 언젠가 딸애와 같이 거리에 나갔다가 장식품 매대 우에 걸린 풍령을 보고 “정말 곱구나!”하고 무심히 한 내 말을 기억했다가 제 손으로 풍령을 만들어 내 생일날에 선물하려 했던 모양이었다.
잘 다듬지 못해 거칠거칠한 편리젓가락, 제대로 끊지 못해 삐죽이 나온 실 끝, 거칠게 만들어진 풍령이지만 그래도 애써 머리를 써서 설계하고 사탕 통을 모으고 내 타박을 들어가며 몰래몰래 만들어서 침대 밑에 감춘 딸애의 갸륵한 마음씨가 가슴 뜨겁게 안겨왔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딸애를 와락 끌어안고 그 고운 볼에 입을 쪽 맞추어주었다 .딸애는 내 립스틱 자리가 난 빨간 볼을 오스카 금상이나 받은 듯 자랑스레 쳐들고 자기 방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런 딸애를 바라보며 나는 이 세상에서 내 딸이 제일이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그득해 났다.
그 전해에도 나는 소학교에 갓 붙은 딸애에게서 생일 선물을 받았다. 그날도 여느 때같이 저녁 늦게까지 학생들에게 진학보도를 해주고 추운 겨울밤에 한 시간이나 자전거를 달려서야 겨우 집에 도착하다나니 나는 극도로 피곤하여 온 몸이 땅속에 막 잦아드는 듯 했다.
캄캄한 층계까지 힘겹게 오르고 나니 집 문을 뗄 때에는 세상이 다 아득하였다. 그때 “엄마 이것 봐요!”하는 딸애의 밝은 목소리가 녹 쓴 돌쩌귀가 달린 듯 무거운 내 마음의 문을 빠끔히 열고 비집고 들어왔다. 학교에서 무슨 장난을 치다 왔는지 때 국이 흐르는 손에 쥔 하얀 봉투가 보이었다.
“뭐냐?”하고 물으며 속지를 뽑아보니 작년에 내가 친구에게서 받았던 연하장이었는데 원래 적혀있던 친구의 글은 뻑뻑 지워놓고 그 아래 빈자리에 딸애가 자기 말을 써넣었었다.
“엄마, 생일을 축하해요!
엄마를 사랑하는 딸 운이로부터“
아직 여물지 못해 비뚤비뚤한 글체로 씌어진 그 축하의 말을 읽노라니 딸애의 그 따뜻한 마음씨가 안겨 와서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볼을 따라 주르르 흘러내리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내 딸인가. 그렇듯 일찍 철이 들고 인정 있는 딸애를 바라보며 나는 어쩌면 가을 달 같이 담담하고 눈같이 싸늘한 내가 그렇듯 인정 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딸애를 낳을 수 있었는지 나로서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딸을 선물해준 하느님에게 감사를 했다. 엄마도 기억 못하는 생일날을 깊이깊이 기억했다가 제 손으로 정성껏 선물을 만들어 뜻밖에 엄마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딸애의 고운 마음씨에 비기니 내가 너무너무 애정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이 깊이 느껴졌다.
나에게도 나를 보배같이 사랑해주시던 어머니가 계셨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칠십 고령에 돌아가실 때까지 그렇게 마음을 써가며 생일선물을 드려보지 못했다. 옷이나 일용소지품 같은 것은 사드리었지만 뜻밖의 선물로 돌연히 기쁘게 해드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도 엄마노릇 해보면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제일에 바삐 돌다나니 어느 결에 한해 또 한해 그냥 스쳐지나버리었다. 그러다 그해 여름방학에 집에 돌아갔을 때 마침 어머니 생일에 맞다들게 되었다. 그래서 일보러 나갔던 길에 생일케이크를 사오려 했는데 온 하루 회의에 참가하고 약속했던 사람과 만나고 연회에 참가하고… 그러다 나니 생각이 미쳤을 때는 이미 상점들이 다 문을 닫고 난 뒤라 생일케이크를 살수가 없었다.
너무 등한했던 자신을 꾸짖으며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 밑에서 해바라기 씨를 파는 할머니를 만나 그것이라도 한 봉지 샀다. 러시아 태생인 어머니께서 평시에 해바라기 씨를 즐겨 까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미안한 대로 내가 해바라기 씨 한 봉지를 내놓자 어머니는 “그걸 다 사왔니?”하고 반가이 웃으시며 받으시었다. 생일케이크대신 해바라기 씨 한 봉지를 받으시고도 매정한 그 딸에게 웃음으로 고마움을 표시해주며 맛나게 잡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멀거니 지켜보는 내 가슴은 후회와 죄책감에 졸아드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나는 물을 끓여 어머니의 몸을 씻어드리었다. 노쇠하여 바로 서지도 못하시는 어머니의 뒷등에 따뜻한 물을 끼얹어주노라니 문뜩 “이것이 마지막으로 씻어드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이 떠올라 가슴이 섬직 하며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어머니가 보실까 얼굴에 묻은 물방울과 같이 눈물을 닦아버리고 정성 드려 어머니의 몸을 씻어드리었다.
그런데 그 예감이 맞아떨어질 줄이야. 어머니는 그 다음해의 생일을 기다리시지 못하고 새해맏이 종소리 속에서 한 많던 이 세상에 원망의 말씀 한마디 남기시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으시었다. 그렇듯 유별나게 나를 사랑해주신 어머니에게 생일케이크도 사 올리지 못하고 마지막 길을 보내드리는 내 가슴은 불효했던 자신에 대한 원망과 후회 감에 오열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까무러치게 울고 가슴 치며 한탄해도 저 세상으로 떠나신 어머니가 돌아오실 리가 없었다.
어찌 그날 생일케이크 사는 일을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 나절로도 자신의 무심과 냉담성에 가슴이 서늘해지었다. 그런 나에 비해보면 내 딸은 얼마나 인정 있고 마음이 따뜻한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세상일과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도 무관심했었다. 자기가 지어놓은 상아탑 속에 갇히어 자아세계에만 빠져 다른 사람에게 자그마한 따뜻함도 베풀어보지 못했거니와 그럴 생각도 못해보았다.
언제가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친구가 감기몸살이 나서 누웠는지라 저녁밥을 지어준 적이 있는데 후에 그 친구가 다른 선생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설마…”하며 누구도 믿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남에게 무심하고 차가웠으면 그런 반응을 보였겠는가.
어두운 층계를 내려갈 때면 “여기는 층계가 다섯이야. 여기는 밑바닥이고…”하며 작은 손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딸애의 기특한 행동에서, 내가 약간이라도 몸이 불편해하면 이마를 안마해준다 허리를 눌러준다 하며 바삐 돌아치는 딸애의 살뜰한 손길에서 엄마인 내가 도리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워갔다.
딸애가 커감에 따라 내 마음에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조금씩 커지었다. 하기에 일본에 온 뒤에는 집을 멀리 떠나온 조카애들에게 해마다 생일선물이 아니면 새해선물을 사주는데 마음을 썼고 평소에도 될수록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요상했다. 뭔가 보답을 바래서는 아니었지만 그러면서도 생일이 다가오면 내 생일에도 누군가 선물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왜 내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없는가요?”하고 은근슬쩍 투정부리니 남편이 “내가 기억하고 있잖아.”하고 웃더니 다이아몬드 네크리스를 생일선물로 사주었다. 심플한 백금체인에 달린 작은 다이아몬드가 뿌려주는 영롱한 반짝임으로부터 남편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왔다. 거기에다 딸애는 달콤한 케이크를 사왔고 남편의 귀띔을 받았는지 조카애들은 예쁜 꽃바구니도 선물해왔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즐거운 생일을 쇨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이구나 하는 것을 깊이깊이 느끼게 된 생일이었다.
누구에겐가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은 가슴속에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은 키우면 커지는 법이다. 내가 내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도 자연히 나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나를 사랑해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작은 선물이라도 마음을 담아서 전해줄 때, 또 그런 마음을 담은 선물을 받아들 때, 우리는 사랑의 오우라(aura)에 싸이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왜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겠는가? 산타클로스가 하느님의 사랑이 담긴 성탄예물을 갖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간 모자, 빨간 옷에 하얀 수염을 단 산타클로스는 어린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하여 산타클로스는 다시 새로운 선물을 준비하고 그래서 어린이들은 또다시 성탄절을 기다리게 된다.
누구에겐가 선물을 줄 수 있고 누군가에게서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사랑과 행복의 사이클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물주기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도라지』, 1994년 2호(2011년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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