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8.비 내리던 그날

genteiko 2013. 6. 4. 14:01

 

 

  후드득 후드득, 창문에 부딪치는 빗방울 소리가 적막한 내 가슴을 두드리며 차갑게 들려온다. 이렇게 찬비가 내리는 날이면 무정한 빗속에 외로이 서서 어쩔 수 없는 막무가내에 마음만 얼어들던 20년 전의 그 감각이 또 스며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된다.

  구슬픈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날, 나는 뽀얀 빗속을 혼자서 외롭게 걷고 있었다. 한 손에는 닭고기가 든 유리단지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색 바랜 까만 우산을 들고 질척질척한 진창길을 걷고 있었다. <잡귀신> <스파이>로 몰리어 감금 당한지 2년이 넘는 아버지를 찾아 예술대학으로 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갇히고 언니는 농촌에 내려가고 친척친우들은 발길을 끊다나니 어머니와 나만 외롭게 남아 적막한 생활을 하고 있던 때이다. 인간과 인간지간의 감정이 싸늘하게 식은 물 같이 담박해지니 다른 그 무엇에라도 감정을 기탁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성정이었던지 그토록 깨끗한 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께서 닭을 치기 시작하시었다. 마치 무인도에 갇힌 로빈손. 크루소가 짐승인 앵무새와 야만인인 <금요일>하고 벗 삼고 지내며 그들에게 자기감정을 기탁했던 것처럼 어머니에게 있어서 하얀 닭 무리는 유일한 벗이자 말동무였다.

  그때 소학생이던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유순한 암탉을 품에 안고 깃털을 쓰다듬어주면서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목격할 때가 많았다. 그때면 나는 고독이 넘쳐흐르는 어머니의 눈길과 마주칠까 저어 되여 얼른 집안에 들어가 버리었다.

  그런데 복은 쌍으로 안 와도 화는 쌍으로 떨어진다더니 어머니께서 그렇듯 애지중지 키우던 닭 다섯 마리가 하루 밤사이에 몽땅 가스중독으로 죽어버리었다. 온 집에 사람이라고는 어머니와 나뿐인데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지 어머니는 그 닭고기가 넘어갈리 없지 옆집에 주자해도 감히 문 두드리기도 무서운 때라 어머니는 별 수 없이 살 고기만 골라 간장에 담그시었다. 설혹 문전거절을 당하더라도 아버지에게 갖다드려 보라고 그래서 내가 떠난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직 자유의 몸이시던 그때, 예술학교로 가는 이 길은 나에게 꿈과 즐거움을 안겨주던 길이었다. 명절공연이나 졸업공연을 앞두고 학교에서 리허설(rehearsal)이 있을 때면 아버지께서는 나를 학교에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 주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공주같이 곱게 차려입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깡충깡충 뛰어가면서 무용가가 될까 음악가가 될까 길섶에 핀 아롱다롱 들꽃같이 아름다운 꿈을 꾸며 걷다나니 즐겁기만 하던 길이었다. 그런데 그 길이 이제는 염라대왕에게로 통한 저승길같이 무섭고 싫었다. 하지만 집에 심부름할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지라 별 수 없이 떠났지만 싫은 걸음이라 20분이면 닿을 길을 한 시간 반이나 걸었다. 그런데도 아침 일찍 떠났던지라 학교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는 여덟 시가 좀 넘었을 뿐이다.

  매일 세 조각의 옥수수떡으로 하루 세 때를 에워야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 닭고기를 드리고 싶었지만 호랑이같이 사나운 홍위병(紅衛兵)들에게 들키면 그저 빼앗기고 쫓기어날 것만 같아 속이 떨려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 혹시 아버지께서 마당 쓸러 나오시지 않겠나(지식인을 노동개조 시킨다고 마당을 쓸게 했었다.)해서 기웃거려 보았으나 비가 와서인지 좀처럼 나와 주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올 기미가 없는지라 나는 싫은 대로 주춤주춤 대문 안에 들어섰다. 텅 빈 운동장은 적막 속에 숨 막힐 듯 고요한데 이따금씩 찬비 속에 움츠리고 앉은 2층 청사에서 “타도하자!”란 구호소리가 터져 나와 깜짝깜짝 나를 놀래었다.

  혹시 아버지께서 지금 투쟁 당하고 계시지나 않는지…, 그렇게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서성거리는 동안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 그 사이 혹간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빗속에서 오돌 오돌 떨고 있는 나를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다. 손발은 얼어들고 지쳐서 뻣뻣해나고 외로움과 소외감에 가슴이 졸아드는 듯 했지만 손에든 닭고기를 처리하기 전에는 돌아갈 수도 없는지라 막무가내 한 심정에 당장 울음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때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며 학교청사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기대에 찬 눈길로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무정한 사람들은 제 갈 길이 바쁜지 급급히 스쳐 지날 뿐 누구도 나의 존재에 주의를 돌려주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 이제는 정말 참을 수가 없어 눈물을 삼키는데 귀 전에 웬 부드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 엄선생님 따님이 옳지?”

  돌아다보니 크지 않은 키에 고수머리를 한 청년이 부드러운 웃음이 담긴 따스한 눈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늘 상냥하다고 외우시던 <양머리총각>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으로 느꼈다. 그래 용기를 내서 청을 들었다.

  “우리 집 닭이 엊저녁에 가스중독으로 다 죽어서…, 엄마가 아버지에게 이 닭고기를 가져다드려라 해서…”

  울먹거리다나니 말끝도 제대로 못 맺는 나에게 <양머리총각>은 동정 어린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참 안됐구나. 그런데 여기서는 갈아입을 옷 외에는 아무 것도 못 받게 한단다. 어쩌겠니. 추운데 여기에서 떨지 말고 어서 집에 돌아가거라. 어머니께서 기다리시겠는데….”

  우락부락 꽥꽥거리는 사나운 호령소리에만 습관 되어온 나는 어쩌다 인정 어린 따뜻한 말소리를 듣자 그만 무어라 대꾸가 나가지 않아 머리만 끄덕이었다. 순간 반나절 줄곧 찬 빗속에 서 있으며 얼어들었던 설음이 탁 풀리며 눈물이 걷잡을 수없이 쏟아져 내리었다. 그래도 눈물을 보이기에는 부끄러운 감이 들어 나는 머리를 떨어뜨린 채 말없이 돌아섰다. 타박타박 학교대문을 나서며 뒤돌아보니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내 쪽을 지켜보고 선 <양머리총각>의 모습이 뽀얀 빗속에서 또렷이 안겨왔다.

  그때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오늘, 가을비가 내리는 날 창밖을 내다보노라니 빗속에 지켜 섰던 그 청년의 모습이 안개같이 뽀얗게 떠오른다. 비록 그날 닭고기는 두고 오지 못했지만 그 청년의 동정에 어린 부드러운 말소리는 얼었던 내 마음을 따뜻이 녹여주었고 그 청년의 모습에서 이 세상에는 그래도 다른 사람의 불행을 동정해주고 구원의 손길을 뻗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만약 그날 그 청년이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걸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언제까지도 그 차가운 빗속에 서있었을 것이고 고립무원의 절망 속에서 세상에 대한 신임을 완전히 잃어버리었을 것이다.

  그에게서 받아 안은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그 뒤 정치적 음영 속에 가리어져 차별 시 당해야 했던 지지리 긴 중학시절, 고등학교시절을 신심을 잃지 않고 머리를 쳐들고 꿋꿋이 보낼 수 있었다. 아무리 냉혹한 사회라 해도 그래도 어딘가에는 <양머리총각>같은 믿음과 따뜻함을 주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그런 믿음으로 내가 해야 할 공부를,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흔들림 없이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확실히 그렇게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나도 힘들었던 산골에서의 귀양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고향도시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나는 6년이란 긴 시간을 보낸 그곳에 미련 같은 것이 전혀 없었던지라 작별인사 한마디 안 남기고 떠나려 했다. 그런데 떠나기 전날 밤에 나에게로 첫 페이지를 찢어버린 일기책을 들고 어두운 산골길을 찾아와 주는 친구들이 있을 줄이야.

  “잘 가. 그리고 잘해!”

  오후 늦게야 내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학급친구들이 새 책을 살 시간이 없어서 누군가 선물로 받았던 일기책을 첫 장의 싸인 부분만 찢어버리고 그대로 선물로 들고 왔던 것이다.

희미한 전등 빛이 흘러나오는 창문 밑에 주르르 늘어서서 첫 장이 찢어진 일기책을 들고 이렇게 진정 어린 축원을 해주는 십여 명의 남학생들의 순박한 눈길 속에서 나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외롭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는 데서 언제나 경원한(敬遠) 마음으로 소원(疏遠)하게 대했던 그들이건만 언제나 꿋꿋한 내 모습을 보아왔기에 나를 동창생으로, 친구로 인정해주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끼었다.

  인간은 아주 작은 일에서, 아주 가벼운 말 한마디에서 크나큰 믿음을 느끼거나 반대로 무서운 절망에 빠진다. 인간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진 이 사회에서 사람마다 그 누군가를 위하여 아주 작은 정이라도 나누어줄 수 있고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살아가기가 좀 더 쉬워지겠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냉혹한 동란의 시대에서는 더욱 어려운 법이다. 하기에 그런 무서운 시대에 ‘자산계급의 나약한 인정’에 빠졌다는 혐의를 쓸 위험을 무릅쓰고 궁지에 빠진 소녀에게 인간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준 그 <양머리총각>에게 나는 더 없는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젠 20여 년이 지났는지라 그 청년의 이름이 무엇이든지 얼굴이 어떻게 생기었던지 다 희미해졌지만 비에 축축이 젖었던 그 곱슬머리와 관심 어린 부드러운 어조만은 마음속에 또렷이 그대로 남아있다.

  차가운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이 시각, 희뿌연 빗속에 서있던 그 청년의 모습을 떠올리며 귀 전에 맴도는 그 부드러운 어조를 음미하노라니 얼어들었던 지친 마음이 저도 모르게 따스해진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행복할까 불행할까….

  차가운 빗속에서 떨고 있는 나에게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준 <양머리총각>, 찢어진 일기책을 들고 먼 길을 달려왔던 친구들, 그토록 선량하고 인정 있던 그들이기에 하느님께서 꼭 행운을 갖다 주실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고 또 그렇게 축원하고 싶은 내 마음이다.

  주르륵 주르륵 비 내리는 이 시각, 그의 창밖에도 비가 내리고 있는지…, 내 축복이 담긴 빗방울이 그 창유리를 두드리고 있을 텐데….

  후드득 후드득….

『천지』, 1995년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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